

10/12 베이시스트 안아주기의 날에 만난 베이시스트 이루리, 전솔기, 정효림, 지애
2025-10-12 • 노가은
10/12 베이시스트 안아주기의 날에 만난 베이시스트 이루리, 전솔기, 정효림, 지애
2025-10-12 • 노가은
매년 10월 12일은 ‘국제 베이시스트 안아주기의 날’(National Hug a Bassist Day). 이를 맞아 축배를 들기 위해 모인 베이시스트 이루리·전솔기·정효림·지애. 서로 다른 고집으로 같은 줄 위를 걷는 그녀들의 울림을 꼭 끌어안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로 한다. 오늘만큼은 무대 아래 흐르던 베이스의 길고 선명한 파동에 온몸을 맡겨보자!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솔기 : 안녕하세요, 밴드 전자양에서 베이스 연주하고 있는 전솔기입니다.
지애 : 안녕하세요, 베이시스트 지애입니다.
루리 : 안녕하세요. 밴드 바이 바이 배드맨에서 베이스 치고, 싱어송라이터로도 활동하는 이루리입니다.
효림 : 안녕하세요. 베이시스트 정효림입니다.
Q. 베이시스트 안아주기의 날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기획에 참여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솔기 : 베이스가 주목 받을 기회여서 좋았고, 여성 베이시스트가 모인다고 해서 더 좋았어요. 함께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왔습니다.
효림 : 베이시스트 안아주기의 날을 작년부터 알고 있었는데, 안을 연주자도 없고 저를 안아줄 연주자도 없더라고요. (웃음) 이 참에 마음껏 안아보려고 왔습니다.
Q. 네 분 모두 평소에 서로를 알고 계셨나요? 촬영 내내 도란도란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시고, 목청껏 응원도 해주시는 모습이 마치 여고 밴드부 쉬는 시간처럼 보기 좋았어요.
지애 : 평소에 정말 팬이에요. 섭외받았을 때, 여기에 제가 껴도 될까 싶었어요.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효림 :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미리 공부하고 왔어요. 다들 너무 멋지게 활동하고 계셔서, 오히려 많이 배웠고 자극도 많이 받았습니다.
루리 : 저는 굉장히 내향적이고, 사람을 잘 안 만나는 편인데요. 인원수가 꽤 있길래, ‘조용히 있어도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숟가락 얹으려고 왔어요. (웃음)
솔기 : 효림 님과 루리 님은 평소에 눈여겨봤었고, 지애 님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너무 귀여워가지고..
입덕.. 하셨군요..!
솔기 : 네.. 지금 완전 빠져들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알아갈 예정입니다.
Q. 베이시스트 안아주기의 날에 떠오르는 동료 여성 베이시스트가 있다면요?
지애 :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이븐 이프의 민지선 베이시스트. 감사하게도 공연을 하면서 여성 베이시스트분들을 많이 만났고, 다양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효림 : 같이 입시를 준비한 8년 지기 친구인 최지혜 베이시스트. 함께 오랜 시간 베이스를 하다 보니 느끼는 부분이 비슷해서, 음악적으로 힘들 때 서로에게 큰 힘이 돼요. 서로 안아주며 재밌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베이스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애 : 중학생 때 밴드부 보컬로 들어갔는데, 음악 선생님께서 베이스의 빈자리도 채워보라고 하셔서 처음 잡게 됐어요. 덕분에 보컬과 베이스를 함께 하게 돼서, 지금도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솔기 : 원래는 프로듀서가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산에서 열린 대형 기획사 오디션에 갔는데, 심사위원분께 프로듀서 하려면 일단 악기부터 배우라고 하시더라고요. 기타, 보컬, 베이스 중 고민했는데, 묵직한 사운드에 빠져서 베이스를 선택했죠. 근데 아직까지 프로듀서는 못하고, 베이스만 치고 있네요.. (웃음)
효림 : 4살 터울의 오빠가 있는데, 어릴 땐 오빠가 하는 게 다 멋있어 보여서 뭐든 따라 했어요. 베이스도 그렇게 시작했죠. 그런데 이상하게 베이스만큼은 오빠가 아닌 온전히 제 것 같더라고요. 오빠는 연기로 방향을 틀었지만, 저는 베이스가 좋아서 계속하게 됐어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쭉 오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요.
루리 : 저는 만화책 NANA를 보고 시작했어요. 만화의 모티브가 된 섹스 피스톨즈의 시드 비셔스(Sid Vicious)와 그의 연인이었던 낸시 스펑겐(Nancy Spungen)을 보며 밴드를 동경하게 됐죠. 밴드라면 줄악기를 해야 멋있잖아요. 그래서 제 눈에 멋져 보이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Q.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면서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은 무엇인가요?
지애 : 학창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하다 보니, 또래 학생분들께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아요. 특히 저를 보고 포기했던 음악을 다시 시작했다거나, 베이스를 잡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제 음악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뿌듯해요.
팬 분들이 대부분 또래였군요..! 별명이 ‘지애 아기’라서 연령층이 높은줄 알았어요.
지애 : 맞아요. (웃음) 한 두 살 정도 많은 언니 팬분들도 많으세요.
루리 : 정말 하고 싶었던 밴드 활동을 통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모두 의미 있었어요. 그래서 소중한 공연이 매번 갱신되지만, 최근에는 펜타포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무려 12년만에 선 펜타포트 무대였는데, 기분이 어떠셨나요?
루리 : 팬분들의 사랑이 하나 하나 생생하게 와닿는 무대였어요. 관객석에 보이는 익숙한 얼굴들은 감동이었고, 덕분에 행복하게 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어요. 예전에는 팬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던 시절도 있었거든요.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설마 누가 내 팬이겠어’라는 생각이 컸죠. 늘 평가받는 듯한 두려움 때문에 어쩔 때는 공연 서는 것 자체가 무섭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무대를 온전히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효림 :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구만 공연에서 모두가 하나가 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어느 순간부터 베이스를 일로만 대하게 되면서 매너리즘에 빠졌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공연에서 제가 세션이 아니라 한 멤버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시니까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멤버들과 관객이 한마음으로 노는 순간, ‘내가 이러려고 음악했지’ 싶었죠. 늘 그날의 공기를 떠올리며, 일을 할 때도 음악을 설레는 마음으로 대하려고 해요.
Q. 보컬도 하는 베이시스트는 정말 드물죠. 그런데 모두 밴드 내에서 보컬 파트를 담당하거나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세요.
지애 : 밴드에서 코러스 맡았을 땐 비교적 분량이 적어서 괜찮았는데, 프론트펄슨으로서 베이스와 보컬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하니까, 정말 어렵더라고요. 가끔은 바보가 된 기분이지만, 점점 적응 중이에요.
솔기 : 그냥 한마디만 할게요, 힘듭니다. (웃음)
효림 : 저는 베이스도 리듬 게임처럼 즐겨요. 손은 정박인데 입은 엇박, 입은 정박인데 손이 엇박. 이런 식으로 테트리스 하듯 맞추죠. 베이스 리듬을 완전히 이해한 상태로 노래하면, 게임 하드 모드 같고 재밌어요.
루리 : 싱어송라이터일 때는 ‘자유롭지 않은 나를 봐, 자유롭지 않아.’ 베이시스트일 때는 ‘자유로운 나를 봐, 자유로워.’
Q. 악기 연주자는 본인 공연뿐만 아니라 세션으로도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세션 연주자로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요?
솔기 : 전기뱀장어와 김사월 밴드는 세션이지만 제 공연을 올리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어요. 여러 곳에서 세션 활동을 하다 보면 언젠가 대체될 수도 있는 자리로 느껴질 때도 있는데, 감사하게도 늘 저를 멤버처럼 가깝게 대해주시고, 세션으로서도 많이 존중해 주세요. 그래서 저도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멤버와 세션의 차이는 지속성에서 나타날까요?
효림 : 세션은 아티스트의 니즈가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멤버랑 다른 거 같아요. 아티스트가 가진 색깔을 잘 살려주는 것도 세션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이니까요. 반면 세션이지만 멤버처럼 느껴질 때는, 팀의 일원으로서 내가 이 곡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돼요. 세션은 기여하고 싶은 회사의 직장인, 멤버는 책임이 명확한 창업가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요즘은 세션 뿐만 아니라 멤버로서 여러 밴드를 병행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죠. 다양한 조합으로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밴드씬만의 재밌는 문화가 된 것 같아요.
솔기 : 맞아요. 팀의 색깔에 따라 연주 스타일이나 태도가 전부 달라지니까, 매번 다른 모습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게 재밌어요. 관객분들도 이런 다양함을 세계관처럼 즐겨주시는 것 같아요.
Q. 10년 만에 돌아온 바이 바이 배드맨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신데,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아요.
루리 : 자유로운 나를 봐, 자유로워. (웃음) 오랜 친구들이랑 같이하는 밴드이기 때문에, 확실히 더 재밌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역시 저는 밴드에서 베이스 치는 게 가장 적성에 잘 맞다고 느껴요. 앞으로도 영원히 하고 싶습니다. (길게 하라고 해서 억지로 한 말이에요.)
Q. 전자양도 2017년 발매한 3집 <던전>이 마지막 앨범인 만큼, 팬들이 새 앨범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소음의 왕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올해 앨범 발매 소식을 들었는데, 살짝 스포를 해주신다면요?
솔기 : 앨범 제목이 <합주와 생활>인 만큼, 밴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전자양 네 멤버의 색깔이 뚜렷하게 담긴 만큼, 하나하나 뜯어보며 듣는 재미가 있어요.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전자양을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연말에 만나요!
Q. 효림 님의 베이스 커버 영상을 통해 베이스의 매력에 입문하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효림 : 음악을 들을 때 베이스가 조금 더 튀게 들릴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했어요. 직접 구현하고자, 베이스가 중심이 되도록 편곡한 커버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편곡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음악을 훨씬 넓게 듣게 된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커버 영상이 있다면요?
효림 : 다 좋아하지만, 폭시(FOXY)의 ‘Rrrrock’은 저를 다시 일으켜준 영상이라 특히 기억에 남아요. 코로나에 걸렸을 때, 아파서 일을 못 하면 언제든 다른 사람이 나를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이 불안했거든요. 그때 이 곡을 들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땡큐 폭시! (웃음)
Q. 솔로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앞으로 베이시스트 지애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신가요?
지애 : 이전에 활동했던 밴드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제 이야기를 담은 음악으로 새롭게 나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싱어송라이터로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인디 클럽을 돌며 팀으로 공연하거나, 페스티벌 무대에도 서보는 게 꿈이에요. 저는 레슨을 받아본 적도 없고, 대학에 간 적도 없어서 모든 걸 독학으로 배웠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려는 분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Q. 베이스마다 각자의 개성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본인의 베이스 자랑을 해주세요!
효림 : 타치 프레시전 그린 컬러는 저에게 네잎클로버 같은 베이스예요. 구입 후 타치 엔도서가 되고 싶어서, 일주일 간격으로 타치를 태그한 영상을 계속 올렸어요. 결국 영상이 타치에 닿아서 실제로 엔도서가 됐죠. 그 이후로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다른 협찬도 들어오고, ‘홀리원뮤직(HolyOne Music)’ 악기샵 사장님과도 좋은 인연을 맺게 됐어요. 정말 많은 일과 좋은 인연을 가져다준 소중한 악기예요
*엔도서(Endorser) = 악기 엠버서더
루리 : 하나를 메인으로 두기보다는 여러 개를 번갈아 쓰는 편인데요. 바이 바이 배드맨 활동하면서는 펜더의 프레시전을 주로 쓰고 있어요. 18살 때 바이 바이 배드맨을 시작하면서, 열심히 모은 적금으로 산 첫 베이스예요. 그 시절, 순수한 밴드 정신이 담긴 악기라 가장 의미가 깊어요.
지애 : 60주년 기념 커스텀 제품인 펜더 재즈 베이스인데요. 헤드랑 바디가 같은 펄 화이트 컬러인데, 그냥 화이트도 아니고 펄 화이트라니.. 너무 예쁘지 않나요? 솔로로서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산 악기라, 제 음악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준 베이스예요.
*루리 님과 지애 님의 화보 이미지 속 베이스는 다른 제품입니다.
솔기 : 2006년에 중고로 구매한 섀도스키 NYC 커스텀 제품을 쭉 써오고 있어요. 연주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제 베이스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동반자 같은 존재죠.
5현 베이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솔기 : 구매할 때, 매물이 5현밖에 없어서? (웃음) 정말 단순한 이유로 선택했지만, 저음역대부터 고음역대까지 사용할 수 있는 음역대가 넓다는 장점이 있어요.
효림 : 대부분의 음악이 더 낮은 음역대를 자주 쓰지 않기 때문에, 보통 4현로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해요. 개인적으로 락에서는 4현이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러프하게 가고 싶을 때는 4현, 슬랩은 역시 4현!’
Q. 하고 계신 음악에서 베이스가 사운드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해요.
솔기 : 전자양에서는 관객분들이 신나게 춤추고 놀 수 있는 사운드를 보여주려는 편이에요. 춤추고 싶게 만드는 베이스만의 묵직한 리듬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션 활동에서는 아티스트의 음악 색깔을 잘 살려줄 수 있는 톤에 중점을 둬요. 김사월 밴드에서는 단단하고 안정감 있는 연주에 기댈 수 있는 따뜻한 톤을, 전기뱀장어에서는 청춘이 느껴지는 음악을 강조할 수 있는 사운드를 구현하려고 해요.
지애: 싱어송라이터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운드로 많은 시도를 해보고 있는 시기예요. 베이스를 치면서 노래하려면 둘 다 신경 써야 하니까, 베이스가 중심이 되도록 다른 악기들이 과감하게 빠져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다른 악기 소리를 많이 쓰지 않고, 베이스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끔 하고 있습니다.
루리 : 밴드의 진가는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낼 때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양한 악기의 토대가 되어, 자연스러운 호흡을 만들어가죠. 그 과정에서 다른 악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음악을 보는 시야도 넓어지는 것 같아요.
효림 : 재즈에서 즉흥 연주를 주고 받는 순간의 치밀한 티키타카를 좋아해요. 솔로를 귀 기울여 듣다가 조용히 화답해주기도 하고, 빌드업될 땐 살짝 물러나 사운드에 집중하게 만들죠. 또 베이스 솔로가 나올 때는 앞부분을 잔잔히 깔아 집중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요. 그렇게 쌓여가는 호흡이 늘 재밌어요.
확실히 베이스는 이타적인 악기군요. (웃음)
Q. 본인이 추구하는 베이스 톤이 있으신가요?
효림 : 너무 좋아하는 주제인데요. (웃음) 저는 미들이 세고, 빈티지한 톤을 좋아해요. 그래서 타치 프레시전을 쓰고 있고, 최근에는 뮤직맨 악기를 구매했어요. 한 단어로 말하면, 톤에서 ‘구린내’가 좀 나야 돼요.
‘구린내’라니, 어떤 사운드인지 더 듣고 싶어요.
효림 : ‘둥둥둥’이 아니라, ‘꽁꽁꽁’에 가까운 톤이요. 저는 오른손 비중이 큰 편이라 브릿지 쪽으로 손을 가져다 대고, 각도를 날카롭게 세워 줄을 스치는 게 아니라 관통하듯 치면 그 톤이 나와요. 톤을 유지하려면 장력이 세야 해서, 지구력을 위한 운동도 자주 하려고 해요.
솔기 : 완전 공감해요. 저는 하드웨어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라, ‘손으로 다 해 먹자’ 주의거든요. 그래서 좁은 영역부터 넓은 영역까지 레인지를 넓게 쓰려고 연습을 많이 했어요. 특히 오른손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 두면 표현력이 확 넓어져서 훨씬 연주가 재밌어요.
지애 : 저는 멜로디컬한 라인을 좋아해서 슬랩보다는 핑거링을 주로 해요. 쨍한 소리보다 미드나 하이가 뭉툭하게 깎인 로우톤을 선호하고, 팜뮤트 주법으로 단단하면서도 둥근 느낌을 내기도 하죠. 그래서 전반적으로 따뜻한 톤을 주로 냅니다.
*팜뮤트(Palm Mute) : 피킹 하는 오른손 손바닥 아랫부분을 브릿지 위의 현에 살짝 대어 현의 울림을 억제하는 주법
루리 : 저는 밴드를 하면서 늘 생각해요. 어떻게 해야 못 배운 사람의 베이스같이 쳐질까. (웃음)
ALL : (환호와 박수)
루리 : 마치 술에 과하게 취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혹은 섹스피스톨즈의 시드비셔스를 떠올리죠. 왼손으로 정확한 피치를 내기 위해 제대로 누르지도 않고, 오히려 흔들리게 눌러요. 근본 없는 느낌으로 막 치려고 해요.
솔기 : 최근 전자양 앨범 녹음 때도 ‘너무 정직하고 깨끗하게 친다’고 혼났거든요. ‘덜그덕거리게 쳐 봐’라고요. 가공되지 않은 러프한 톤이 진짜 밴드 음악이라고 말하는 리스너도 많은 것 같아요.
효림 : 피카소가 아이처럼 그리기가지 몇 년이 걸렸다는 말이 있잖아요. 사실 그런 느낌이죠.
루리 : 잠시만, 피카소는 너무 부담돼요. (웃음)
앞으로 베이스 들을 때, ‘구린내 톤’, ‘못 배운 사람의 톤’을 떠올릴 것 같아요.
루리 : 헤드라인 ‘타치 엔도저, 정효림. “타치 프레시전은 구린내가 난다..”’
Q. 기타, 드럼 솔로만큼 멋있는 베이스 솔로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효림 : 베이스만이 할 수 있는 솔로가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 피아노와 기타는 컴핑을 하면서 솔로를 하잖아요. 그런데 베이스 솔로는 컴핑을 할 수가 없어서, 거의 드럼과 둘이 존재해요. 그 안에서 코드웍을 제가 혼자 끌고 나가는 재미가 있죠. 모두가 조용해지면 제가 음을 딱 하나만 쳐도 다들 귀를 기울이게 돼요. ‘저런 소리가 있었어?’ 하면서요. (웃음) 하나의 음으로 시작해 조금씩 노트를 늘려가다가, 마지막에 슬랩으로 끝내면 그날은 여운이 남아서 잠이 안 와요. (웃음)
루리 : 길게 말하는 것보다 딱 한 마디면 되는 연주가 사람을 울릴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역시 단순함이 최고죠.
솔기 : 베이스 리프로 시작하는 곡이 잘 없는 편인데, 인트로에서 베이스 사운드가 또렷하게 들리면 그 자체로 솔로처럼 리듬감이 살아나요. 단순한 한 음이 곡의 분위기를 다 잡아줄 때, 그게 정말 멋있어요.
*컴핑(Comping): 음악에서 주 멜로디나 솔로 연주에 맞춰 리듬감 있는 코드 반주를 하거나 다른 연주를 보충하는 연주 기법
*백킹(Backing) : 솔로 연주를 받쳐주는 연주
Q. 가장 자신 있는 베이스 연주 테크닉이 있다면요?
솔기 : 둥둥둥둥이요. 8비트.
ALL : (환호와 박수)
솔기 : 8비트가 제일 자신 있고, 그 순간 자체를 좋아해요. 연주를 이어가는 기분이 마치 운전하는 느낌이랑 비슷하거든요.
효림 : 8비트 간격을 녹음해보면, 그리드가 다 안 맞고 파형이 완전히 달라져요.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연주죠. 진짜 멋있어요.
지애 : 팜뮤트로 라인 짜는 거요! 그래서 지금 곡 벌스에 멜로디컬한 팜뮤트 라인을 넣은 노래를 하나 쓰고 있어요.
효림 : 저는 가로로 넓은 엄지 덕분에 다운 업이라는 슬랩을 일정한 톤으로 연주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부끄러워서 숨겼었는데, 보다 보니 베이시스트로서 자랑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여기만 진한 색으로 네일아트를 했어요. (웃음)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베이시스트인 빅터 우튼(Victor Wooten)도 저랑 엄지 모양이 똑같아요. 그래서 내한 공연 때 엄지를 들고 찍은 사진을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다운 업(Down Up) : 줄을 한 번은 아래로 튕기고, 다음은 위로 튕기는 연주 방식
Q. 빵빵한 베이스 사운드가 듣고 싶을 때 듣는 음악 한 곡씩 추천해 주세요.
지애 : Muse - Hysteria
루리 : The Smiths - This Charming Man
효림 : Twennynine - Just Right for Me
Q. “베이스 매력 모르는 사람 불쌍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베이스가 매력적인 악기잖아요. 아직 베이스의 매력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지애 : 공연에 가면 심장을 둥둥 치는 소리가 바로 베이스인데요. 만약 못 들으신다면, 그냥 마음으로 느껴주세요!
효림 : 못 들었어도 이미 빠져 있을 거예요. 모든 음악에 존재하니까요. 그 울림을 기억하고 계실 거라 믿어요.
솔기 : 베이스 없이 음악 한 번 들어보시면, 무슨 말인지 알 거예요.
루리 : 못 즐기실 거라면 즐기지 마세요. (웃음) 어차피 멋있고 맛있는 건, 아는 사람들끼리 향유하면 되니까요.
효림 : (고개를 끄덕이며) 구걸하지 않습니다.
Q. 인디 음악 씬에서 ‘여성’이자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면서 겪는 고충이 있다면요?
솔기 : 예전에는 “여자치고 베이스 잘 친다.” 이런 말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그럴 때 ‘아무리 노력해도, 이 사람들한테 나는 무대에 서는 여자구나’ 라는 생각에 정말 허탈했어요. 근데 지금은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보기보다, 아티스트로서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아요. 아직 부족하지만요. 이는 씬에서 여성 뮤지션의 입지가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성 뮤지션들이 알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이 더 많아져서, ‘여성’이기 전에 ‘뮤지션’으로 존중 받을 수 있는 씬이 되면 좋겠어요.
엠넷 글로벌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BAND PROJECT]의 ‘2011년 1월 1일 이전 출생 남자’라는 지원 자격 항목이 여성 뮤지션의 기회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했었죠. 이처럼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바꿔나갈 부분은 또 남아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솔기 : 맞아요. 멋있는 여성 뮤지션들이 정말 많은데, 이를 다뤄주는 매체는 턱없이 적다고 느껴요. 그런 점에서 이 인터뷰가 굉장히 솔깃했어요.
루리 : 매체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전보다 간극이 좁혀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무대에 설 기회가 없더라도, 스스로 채널을 운영하면서 주체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환경이니까요.
효림 : 프론트펄슨으로는 많지만, 오래 활동하는 여성 베이시스트의 선례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 수십 년 뒤 제 모습이 어떨지, 나이가 들어도 계속 베이스를 잡을 수 있을지 늘 궁금하죠. 선례가 없는 만큼, 제가 ‘고령의 현역 여성 베이시스트’로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할머니 베이시스트, 멋있잖아요? (웃음)
지애 : 상대적으로 다른 포지션에 비해 베이시스트가 덜 주목받는 게 늘 아쉬워요. 방송 촬영을 해도 분량이 적은 경우가 많고요. 그래도 최근에는 베이스 사운드가 중심이 되는 K-POP 음악이나 베이스 밈을 활용한 릴스를 보면서 이전보다 베이스에 대한 관심이 확실히 늘었다고 느껴요. 우리 베이스 앞으로도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웃음)
Q. 인디씬 혹은 음악 산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루리 : 해외와 국내 공연 환경은 사운드나 장비 면에서 차이가 꽤 커요. 환경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다 보니, 국내 공연에서 즐길 수 있는 음악의 퀄리티 자체에 한계가 있죠. 더 좋은 음악을 함께 향유하려면, 좋은 장비와 공연장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산업 자체가 커져야 하고, 산업이 커지려면 소비가 늘어나야겠죠. 그리고 소비가 많아지려면, 활동하는 뮤지션들도 더 멋진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요. 아무렴, 저희도 열심히 해야겠죠. (웃음)
지애 : 저도 공감해요. 일본에서는 테크라이더 뿐만 아니라 조명까지 정말 세심하게 맞춰주거든요. 근데 한국은 아직 밴드 공연 환경이 그런 면에서 많이 부족해요. 일본은 밴드 음악이 이미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한국은 아직 인디 음악이 낯선 분들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수요의 차이가 환경의 차이로 이어지는 거죠.
솔기 : 음악 산업에서 인디 시장의 점유율은 여전히 낮아요. 주목받는 뮤지션이 한정적이다 보니, 그 안에서도 인기 있는 몇 팀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죠. 인디로 활동하다 보면 예산도 많지 않으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음악을 더 알릴 수 있을지 늘 고민이에요. 관심이 필요한 인디 뮤지션들에게도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닿았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음악을 향유하고, 조금 덜 알려진 음악들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것. 그게 결국 인디씬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Q.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빛나고 있는 베이시스트들을 안아주는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지애 : 베이스를 연주한다는 건 자신만의 단단한 고집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고집을 계속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굵은 베이스 줄처럼 끊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오래오래 함께 연주하면 좋겠습니다.
효림 : 베이스 안에서도 각자만의 매력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이 쓰는 악기를 사랑하고, 손끝마다 담긴 고유한 톤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결국 그 모든 게 나를 만드는 소리니까요.
루리 : 다 각자 사는 거야. (웃음) 열심히 하세요!
솔기 : 둥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