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재발, 디구루, 힙노시스테라피, oddeen, 시봉새에게 한국 전자음악 씬을 묻다
2026-08-16 • 김동겸, 노가은
가재발, 디구루, 힙노시스테라피, oddeen, 시봉새에게 한국 전자음악 씬을 묻다
2026-08-16 • 김동겸, 노가은
테크노와 하우스처럼 몸을 움직이는 음악부터 앰비언트와 IDM, 노이즈처럼 소리 자체를 탐구하는 음악까지 모두 전자음악(Electronic Music) 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다. 하나의 문법으로 묶기 어려울 만큼 넓은 범위를 아우르지만, 전자적인 방식으로 소리를 만들고 변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쩌면 전자음악은 장르라기보다 각자가 원하는 소리를 찾아가는 하나의 방법에 가깝다.
1990년대 말 ‘테크노 부흥’이 일었지만, 대중과 언더그라운드 씬 사이의 간극으로 그 흐름은 다음 세대까지 온전히 이어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자음악가들은 서로 떨어진 섬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음악을 이어갔다. 2010년대 이후 새로운 공연장과 플랫폼이 등장하며 멈춰있던 씬이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고, 현재는 다양한 문법과 장르로 교차되며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랩 캐즘은 전자음악 씬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온 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1세대 테크노 뮤지션이자 태싯그룹과 WeSA를 통해 실험 전자음악의 기반을 만들어온 가재발, 이디오테잎으로 전자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디구루, 힙합과 전자음악의 결합을 통해 세계로 나아가는 힙노시스테라피, 신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레이블 ohhu의 oddeen, 클럽의 틀을 깬 ACS를 운영하는 DJ 시봉새. 여섯 명의 서로 다른 궤적을 따라 한국 전자음악의 끊어진 세대가 다시 맞닿는 지점을 살펴보자.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영광이다. 전자음악 씬에 어떻게 몸담아왔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가재발 : 첫 싱글을 냈던 게 1999년 < techno@kr >이었고, 2000년에 첫 앨범을 냈다. 2004년에 첫 레이블을 만들었고, 이후 미디어 아트 팀인 태싯그룹 과 페스티벌, 레지던시, 아카데미를 아우르는 플랫폼 ‘WeSA’ 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결국 계속 전자음악을 하고 있다. (웃음)
디구루 : 2000년대 초반에 DJ를 시작했다. 그러다 2008년쯤 이디오테잎(IDIOTAPE) 이라는 전자음악 밴드를 만들어 쭉 두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가재발 형과 함께 레프트 필드(Left field) 성향의 전자음악 레이블 ‘상수레코즈’ 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짱유 : 힙합&전자음악 듀오 힙노시스테라피(HYPNOSIS THERAPY) 에서 랩과 보컬을 하고 있다. 힙합 씬에 있다가, 전자음악이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3~4년 정도밖에 안 돼서, 오늘 씬에 계시던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배우러 왔다.
Jflow : 힙노시스테라피에서 프로듀싱 하고 있는 제이플로우(Jflow)라고 한다.
oddeen : 오딘(oddeen)이라는 이름으로 전자음악을 만들고 있고, 영상과 디자인 등 표현할 수 있는 도구들을 사용해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창작자다. 자체 레이블 'ohhu' 를 운영하며, 이제 막 전자음악을 열심히 하고 있다.
시봉새 : 서울에서 공연장 'ACS(현 축제)' 를 8년째 운영하며 때때로 DJ도 한다. 파릇파릇한 젊은 아티스트들이 이곳을 거쳐 가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덕분에 자랑스러운 전자음악가들을 만나뵐 수 있어 반갑다.
레프트 필드(Left field) : 일상이나 예술 분야에서 전혀 뜬금없는 것, 혹은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성향을 이르는 말
1990년대 후반 모하비의 <테크노전자음악잡동사니 = 타나토스>, 달파란의 <휘파람 별> 등 초기 전자음악 음반들이 등장했다. 당시 전자음악에 대한 반응과 창작 환경은 어땠나?
가재발 : 당시에는 전자음악이라는 개념 자체가 국내에 처음 들어오던 시기였다. 인프라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온갖 시도를 하며 진짜 끌리는 대로 만들었다. 해외에 잘하는 아티스트를 무작정 따라 해보기도 하고, 국악이랑 섞기도 하고. 좋게 말하면 콜라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짬뽕 같은 시도들이 아주 자유롭게 터져 나오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다 보니 정보를 얻기 위해, PC 통신을 중점으로 다양한 음악 동호회가 생겼다. 하이텔에 ‘21세기 그루브’ 라는 일렉트로닉 동호회가 있었는데, 전자음악 씬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다 거기에 모였다. 거기서는 많이 모여도, 실상 공연을 하면 10~15명 있기도 하고. (웃음)
당시 21세기 그루브에 있는 뮤지션들과 낸 컴필레이션 음반이 < techno@kr >로 알고 있다.
가재발 : 테크노 독립 레이블 ‘DMS TRAX’를 통해 발매했고, 당시 동호회 회원이었던 프렉탈(Fraktal), 산소박사, 달파란 등과 함께 참여했다. 한 곡만 참여해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발매 공연도 한 번 했던 것 같다.
디구루 : 나도 당시 '21세기 그루브' 회원이었는데, 지금 내 활동명 '디구루'도 그 시절 ID다. 그때는 전자음악을 아는 사람 자체가 극소수였다. 보컬이 없으니까 대중들은 그저 스포츠 뉴스 시작할 때 나오는 시그널송 정도로 생각했다. 모하비 형이 가내수공업으로 MTR(Multi Track Recorder) 녹음을 한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 인사동에서 발표회를 할 정도였다.
90년대가 아닌, 현재의 시점에서 초기의 전자음악을 들었을 때는 어떤가?
디구루 : 돌이켜보면 당시 전자음악을 듣던 사람들은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가 있었다. 해외의 웰메이드 사운드와 자꾸 비교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그 당시 유럽 트랙과 한국 트랙을 비교해 들으면, 오히려 테크닉이 미흡해서 할 수 있는 독창적인 시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당시엔 완성도나 매끈함만 따지느라 로컬 사운드의 가치를 평가절하했던 면이 있어 아쉽다.
시봉새 : 나도 techno@kr을 처음 들었을 때, 서양과 다른 사운드가 강력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우리 안에 있는 ‘뽕짝’ 같은 정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당시와 지금의 전자음악에서 사용하는 소리는 아예 다른 것 같다.
짱유 : 모하비 님은 요즘 뭐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마지막 소식이 이집트에 악기 하나 들고 가셨다는 소문이었는데…
가재발 : 지난번에도 한국에 들어와서 공연했다. 1년에 한 번씩 공연하니까 잘 안 보이는 것뿐이다. 아마 이제는 다시 안 떠날 것 같다. (웃음)
MTR(Multi Track Recorder) : 여러 트랙으로 나누어 악기나 보컬을 녹음하고, 공연 시 반주와 효과음을 재생하는 장비 또는 음원
테크노는 서태지, 신해철 등의 대중음악을 통해 먼저 소개됐고, 1990년대 후반 이정현의 ‘와’를 계기로 크게 유행했다. 당시 대중이 소비한 테크노와 언더그라운드 씬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었나?
가재발 : 이정현의 ‘와’는 대중이 테크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기 전에 등장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장르보다 춤이나 패션처럼 컨셉적인 요소가 먼저 소비되면서, 테크노라는 장르 자체가 조금 왜곡되어 인식됐다. 지금도 테크노가 공중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아니지 않나. 1집 <O.N.DA>도 5천 장 가까이 팔렸는데, 다들 이정현 같은 음악인 줄 알고 사간 경우였다. (웃음)
1세대 전자음악가들과 PC 통신의 영향으로, 레이브 및 클럽 문화가 확대되면서 101, 108 등의 테크노 클럽이 등장했다. 당시 자주 활동했던 공간들의 특징은 무엇이었나?
가재발 : 101, 108은 테크노 클럽의 성지 같은 곳이었는데, 지금처럼 편하게 놀러 가는 분위기와는 달랐다. 개량한복 같은 옷을 입거나 등에 대파를 꽂고, 단발머리를 전부 세우는 등 오는 등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들에게 클럽은 삶의 중요한 일부였다.
한편 ‘와’를 통해 테크노를 접하고 클럽에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레이브나 테크노를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한 시간쯤 있다가 “저 DJ는 왜 처음부터 같은 음악만 트냐”고 묻고 나가기도 했다. (웃음)
디구루 : 인터넷 속도가 느려 온라인으로 음악을 들을 수 없던 시절이니, 전자음악을 들으려면 무조건 홍대 클럽으로 가야 했다. 그래서 매주 가면 늘 같은 사람들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친해지며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당시 레이브 문화는 샤머니즘이나 이너트립(inner trip)에 빗대어 설명되기도 했다. 별다른 퍼포먼스 없이 모두가 DJ를 바라보며 12시간, 길게는 2박 3일 동안 음악에 몰입해 춤추는 모습이 종교적인 의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도 눈을 감고 밤새 춤만 췄다.
레이브 문화가 약물 문제와 연결되며 클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됐고, 결과적으로 전자음악 씬은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에 2000년대 초반 거품처럼 사라졌다. 당시 상황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디구루 : 2002년 월드컵이다. 당시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이 놀 수 있도록 홍대를 관광특구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약물 관련 문제가 불거지면 곤란하니 클럽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 레이브 문화의 본질은 사라지고, 이후 ‘클럽 데이(CLUB DAY)’라는 형태가 얹어졌다. 대중음악이 3 ~ 5분 안에 소비된다면, 레이브는 하룻밤을 하나의 호흡으로 8~10시간 동안 음악을 경험하는 문화였다. 그런 긴 호흡을 즐기던 사람들이 사라지자 베뉴도 장사를 위한 요소를 늘렸고, 거기에 바나나걸, 홍록기 같은 클럽 음악들이 기름을 부었다. (웃음) 결국 언더 씬 중심의 레이브 문화는 끊기고, 클럽은 상업적인 유흥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가재발 :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의 시각에서 보면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없었던 탓도 크다. < techno@kr >이나 DMX 이후에도 새로운 뮤지션이 거의 유입되지 않았고, 전자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부족했다. 클럽에서는 술을 팔아야 하니 사람들이 춤추고 놀 수 있어야 하는데, 프로듀서는 노브(knob)를 조작하며 라이브를 하니 서로 잘 맞지 않았던 거다. 결국 새로운 뮤지션이 유입되고 서로 교류할 공간과 기반이 부족해 씬이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고, 전자음악가의 세대도 끊어진 것 같다.
디구루 : 당시에는 DJ와 프로듀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강했다. 프로듀서는 “트랙도 못 만드는 애들이 무슨 DJ냐”고 하고, DJ는 “플레이할 만한 퀄리티의 트랙도 못 만들면서 무슨 전자음악이냐”고 했다. 로컬 아티스트가 음원을 내면 DJ가 플레이하고, 거기서 아이디어가 생기면 리믹스나 공동 작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필요했는데 당시에는 그런 교류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클럽 데이(CLUB DAY): 여러 클럽들을 하나의 티켓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행사
*노브(knob): 신시사이저, 믹서 등 전자음악 장비에 달린 회전식 조절 손잡이. 음량, 음색, 필터 등의 값을 조절하는 데 사용한다.
현재도 DJ와 프로듀서 사이에 교류나 화합이 어려운 분위기가 남아 있는가?
짱유 :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기보다 화합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로컬 씬이 작을수록 모두의 힘을 끌어모아야 하는데, 아티스트들이 각자 섬처럼 둥둥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디구루 : 밴드를 하던 친구들도 전자음악 씬에 오면 “왜 다들 혼자 하냐”고 묻는다. 생각해 보면 DJ는 밤새 혼자 음악을 책임지고, 프로듀서도 혼자 작업한다. 애초에 혼자가 편한 사람들이 전자음악을 하는 것 아닐까. (웃음)
oddeen : 전자음악을 하는 친구들은 정말 집 밖에 안 나간다. 클럽에도 잘 안 가고 방에서 작업만 한다. DJ 분들은 협업이나 기획에 적극적인 편인데, 프로듀서들은 음악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자신을 어떻게 기획하고 알려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교류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방법을 잘 몰라 누군가 끌어주기를 기다리는 거다.
가재발 : 기본적으로 전자음악 프로듀서들에게는 ‘루저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다. (웃음) “아무도 내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 관객도 안 오고 티켓도 안 팔릴 거야”라는 태도 말이다. 공연을 직접 만들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팔아야 하는데, 그런 능동적인 자세를 어색해한다. 돈을 받고 연주해 달라고 하면 하지만, 함께 공연을 만들고 직접 프로모션하자고 하면 선뜻 나서지 않는 식이다.
가재발은 테크노와 대중음악 등 서로 다른 형태로 전자음악을 선보여오다, 태싯그룹에서 ‘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러한 표현 방식과 도구의 변화는 어떻게 이어져왔나?
가재발: 형태만 계속 달라졌을 뿐, 난 계속 전자음악을 해왔다. 바나나걸도 방구석에서 아무리 전자 음악을 만들어도 불러주는 곳이 없으니, 직접 대중에게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엉덩이’ 원곡 역시 하우스 음악이었지만, 당시 대중에게는 어려웠다. 어쨌든 그 저작권 덕분에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웃음)
기존 악기나 프로그램에는 회사가 정해놓은 고유한 색깔과 소리가 있다. 음악가가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범위에도 한계가 있었고, 나는 그 지점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다 Max/MSP를 접하면서 사운드뿐 아니라 비주얼까지 직접 다룰 수 있게 됐고, 그 작업이 자연스럽게 태싯그룹(Tacit Group)으로 이어졌다.
태싯그룹이라고 하면 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하지만, 내게는 표현하는 도구를 바꾼 것뿐이다. 리액터(Reaktor)에서 아날로그 악기나 모듈러로, 다시 슈퍼콜라이더(SuperCollider) 같은 코딩으로 옮겨가듯 악기가 달라진 거다. ‘Game Over’를 들어보면 본질은 완벽한 하우스 음악이다. 결국 태싯그룹도 알고리즘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도구로 전자음악을 만드는 방식이다.
처음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가재발 : 당시에는 미디어 아트가 막 등장하던 시기였고, 미디어 아트는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걸 공연으로 선보이는 것 자체가 낯설었던 거다. 처음 태싯그룹을 선보였을 때는 국내 유수의 미술관에서도 “이런 걸 하다니, 죽인다”라며 난리가 났었는데, 그러고 끝이다. (웃음)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어려웠는데, 오히려 열 살 정도의 어린 친구들은 선입견 없이 그대로 보고 느끼면서 더 재미있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Max/MSP : 1985년 밀러 파켓(Miller Puckette)에 의해 IRCAM에서 처음 개발이 시작된 비주얼 프로그래밍 언어
*리액터(Reaktor) : 가상 모듈러 신디사이저 및 사운드 디자인 소프트웨어
디구루는 이디오테잎을 통해 전자음악을 라이브 밴드 포맷으로 확장했다. 당시 밴드 셋을 시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디구루 : 처음에는 레이블을 만들고 컴필레이션을 내면서 전자음악 씬을 활성화하려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변화가 일어나지 않자, 내가 좋아하는 전자음악 씬을 어떻게 하면 더 키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씬을 만들어줄 스타가 필요하다’ 는 거였다.
그래서 클럽 밖의 대중에게 전자음악을 어떻게 전달할지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당시 음악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었고,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퍼포먼스 형태는 록 밴드였다. 그래서 전자음악을 밴드의 형태로 전달하기 위해 신시사이저와 리얼 드럼이 충돌하는 이디오테잎을 결성했다.
2012년 발매된 정규 1집 < 11111101 >은 방송과 페스티벌을 통해 널리 알려지며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씬의 스타’가 된 이디오테잎은 한국 전자음악 씬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디구루 : 잠깐 나가 있어야 되나. (웃음)
Jflow : 이디오테잎은 전자음악을 어렵게 느끼던 대중과 씬 사이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테크노 클럽은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지라도, 페스티벌에서는 이디오테잎의 음악에 다 같이 뛰어논다. 전자음악의 무대를 클럽 밖으로 넓히며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었다.
짱유 : 사람들은 전자음악은 몰라도 < 더 지니어스 >에 나온 이디오테잎의 음악은 알지 않나. 대중을 겨냥해 자신들의 색깔을 바꾸지 않고도, 보컬이나 가사 없이 리스너를 매료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처음 들었을 때 한국 음악인 줄 몰랐을 정도로, 해외와의 퀄리티 차이를 좁힌 팀이라고 생각한다. 후배가 선배에게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정말 잘하고 계시는 것 같다. (웃음)
디구루 : 처음부터 지금 같은 반응이 있었던 건 아니다. 초창기 펜타포트에서 공연할 때는 한 관객이 “노래는 언제 해?”라고 하기도 했다. (웃음)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더 지니어스>를 기점으로 여러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전자음악을 들어야지” 하고 듣는 게 아니라, 음악을 먼저 좋아하고 비슷한 음악을 찾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장르를 알게 된다. 결국 장르보다 음악으로 먼저 소비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국내 최초의 일렉트로니카 레이블인 ‘영기획’, 하우스 기반 전자음악 레이블 ‘허니베저 레코드’, 실험음악 모임 ‘닻올림’ 등 저마다의 색을 가진 레이블과 플랫폼들이 한국 전자음악 씬을 형성해왔다. 각자 인상 깊게 기억하는 곳이 있나.
짱유 : 독창적인 소수의 한국 전자음악가들을 소개하던 웹사이트 **‘피카소’**가 기억에 남는다. 이를 통해 전자음악에 대한 이해를 많이 넓힐 수 있었다.
ACS : '영기획' 을 통해 처음 전자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소속 뮤지션들도 대중적이면서 밴드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음악을 많이 해서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oddeen : ‘영기획’ 은 “한국에서 전자음악으로 내 이야기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곳이다. 앨범이나 소개글에서 느껴지는 음악에 대한 애정, 공연장에 오직 전자음악을 들으러 온 10명 남짓한 관객들을 보면서 이 음악을 어떻게든 알리고 이어가려는 간절함을 느꼈다. 다들 그렇게 무대를 지키는데 나도 콧대 세우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다. 영기획을 보며 한국 인디 뮤지션들을 더 동경하게 됐고, 나도 한국 유통사를 통해 첫 앨범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2014년 이후 WeSA와 SCR 같은 플랫폼들은 교육, 레지던시, 아카이브, 국제 교류까지 아우르며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이러한 플랫폼 구조가 왜 필요해졌다고 생각하나?
가재발 : 결국 시장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해외 페스티벌을 다니며 전자음악 씬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따라 해본 뒤, 한국 시장에 필요한 방식으로 하나씩 바꿔왔다.
전자음악은 누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니 먼저 교육이 필요했고, 교육을 통해 창작자가 나오면 이들이 설 무대도 필요했다. 아카데미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당시 전자음악가 대부분이 음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자신이 익힌 기술을 가르치며 조금이라도 수익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그렇게 교육이 생기고, 공연할 곳이 없어 WeSA를 만들고, 페스티벌과 레지던시까지 하나씩 이어졌다. 결국 지금의 구조는 척박한 한국 전자음악 시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맞춰 고쳐온 생존 장치들이다.
그중에서도 수잔 치아니(Suzanne Ciani)나 마우스 온 마스(Mouse on Mars)처럼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해외 거장들을 직접 초청해 소개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획은 어떤 의도로 이어오고 있나?
가재발 : 음악적으로나 사운드적으로 “이런 사람이 전자음악을 해야지” 싶은 분들을 모셔오고 있다. 요즘 오디오 비주얼이 주목받으면서 오디오보다 화려한 비주얼에 먼저 반응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래서 오히려 사운드 자체가 좋은 전자음악가들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 내년에는 실험 전자음악을 대표하는 레이블 ‘Raster-Noton’을 만든 프랑크 브레트슈나이더(Frank Bretschneider)를 초청할 예정이다. 화려한 비주얼보다 전자음악의 사운드 자체를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고 싶다.
소개하고 싶은 사운드와 작가는 명확하지만, 국내 수요층이 적다 보니 현실적인 간극도 클 것 같다.
가재발 : 해외 거장에게 “공연 한 번만 해달라, 돈은 없으니 밥 사주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웃음) 비행기부터 초청비까지 비용이 많이 드는데, 국내 시장은 너무 작아서 당장 티켓을 몇 장이나 팔 수 있는지가 문제다. 수잔 치아니처럼 유명한 아티스트는 초청비도 비싸지만, 어느 정도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소개하려고 한다.
디구루 : WeSA 아카데미와 페스티벌이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수업과 툴을 접한 사람들이 쌓였고, 이제는 그들이 다시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씬의 선순환이 만들어졌다. 그런 기반이 없었다면 수잔 치아니를 데려왔어도 아무도 안 들었을 거다.
가재발 : 실제로 지금 부트캠프에서 에이블톤을 가르치는 고담(GO DAM)도 예전에 나한테 수업을 들었던 친구다. 어느새 한 세대가 지나갔다.
디구루와 oddeen은 모두 독립 레이블을 설립했다. 레이블을 직접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oddeen : ‘ohhu’는 기획이나 아트워크, 뮤직비디오, 글쓰기, 유통 같은 과정에 어려움을 겪어 방구석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티스트들을 위해 만들었다. 나 역시 완성된 음악가도, 아는 사람이 많은 사람도 아니지만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직접 돕고, 할 수 없는 건 다른 사람과 연결하면서 그들의 음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하고 있다. 지극히 내 취향으로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디구루 : WeSA를 오랜 시간 도우면서 국내외 전자음악가들의 무대를 많이 봤다. 그중 논댄스 전자음악(Non-dance Electronic Music)이 클럽이나 일반적인 전자음악의 공간보다 미술의 영역에서 주로 소비되는 게 답답했다. 이 음악도 충분히 클럽에서 소비될 수 있는데, 정작 아티스트들은 각자 외롭게 작업하고 있더라. 각개전투하던 사람들이 모이면 지금과 다른 재미있는 무언가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상수레코즈’를 만들었다.
*논댄스 전자음악(Non-dance Electronic Music): 앰비언트, IDM 등 춤을 추기보다 감상이나 실험을 위해 만든 전자 음악
서울의 전자음악 공간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공연의 형식을 만들어왔다. 공간을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가재발 : 전자음악이 항상 가난한 환경에서 공연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전자음악은 아주 낮은 주파수까지 사용하는데, 당시에는 우퍼 하나 없이 공연하는 경우도 있었다. 클럽의 스피커 역시 라이브 공연에 적합한 것과는 다르다. 왜 전자음악은 제대로 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곳에서 공연해야 할까 싶었고, 좋은 사운드를 온전히 들려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복합문화공간 ‘THILA’를 만들었다.
시봉새 : 나는 원래 밴드 라이브를 좋아한다. 일본에서 디제잉하면서 보니 파티마다 DJ와 라이브 뮤지션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더라. 라이브 뮤지션을 파티와 분리하기보다 함께 묶으면 서로 다른 음악가들이 교류하고 관객과 만날 접점도 늘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ACS에서도 DJ와 라이브를 함께 구성하기 시작했다. 고정된 DJ 부스도 없다. 쓰레기통 위에서 디제잉할 때도 있다. (웃음) 그때그때 공간을 바꾸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동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oddeen : 여러 클럽을 다니다 보면 공간의 구조와 공연 방식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공간 자체를 즐기기보다 특정 라인업을 보기 위해 찾는 곳이 되면서 관객들이 계속 밖으로 샌다. ACS는 그런 점에서 달랐다. 처음 갔을 때 무대도 없이 아티스트가 바닥에 누워 공연하는 걸 보고 ‘여기 대박이다’ 싶었다. (웃음) 무대가 생긴 뒤에도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그대로라서 좋아한다.
ACS가 기획한 '퓨처관광메들리'는 뽕짝, 관광메들리, 카바레 등 이전 세대의 음악과 현재의 클럽 문화를 한 무대에서 연결해왔다. 이러한 기획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시봉새 : 뽕짝 문화는 시청각적인 종합 예술이다. 고속도로 카세트 테이프 커버만 봐도 말도 안 되는 디자인인데, 그게 곧 음악으로 들린다. 이 문화가 끊기기 전에 빨리 젊은 친구들에게 들려줘야겠다는 조급함으로 시작했다. 기성세대 뽕짝 뮤지션과 각설이 분들을 모신 무대를 관객들이 재밌게 즐겨주면서 어느새 다섯 번째까지 이어졌다.
앞서 언급한 분들을 찾고 섭외하기 위한 과정이나 노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시봉새 : 퓨처관광메들리에 모시는 분들은 오래전부터 뽕짝 음악을 해오셨지만 SNS로 활동하는 분들이 아니니까 내가 직접 찾아가야 한다. 카바레든 밤무대든 그분들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 간다. 처음엔 젊은 세대에 대한 경계심이 있으셔서 보통 한 번에 섭외가 안 된다. 그래도 계속 찾아뵙다 보면 어느새 요구르트도 하나씩 내어주신다. 그때 “지금 하시는 음악이 정말 빡세고 임팩트 있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축제를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대부분 흔쾌히 응해주신다.
가재발 : 이박사가 와야겠네. (웃음)
시봉새 : 이박사 님도 모셨었고, 250 님도 모셨다. 전 세대를 통합하는 무대를 만들고 있다.
최근 ACS의 이름을 축제로 바꿨다. 공연장을 멈출 결심에서 이름을 바꿀 결심의 변화는 무엇이었나?
시봉새 : 이전은 공연장의 형태를 만들기 위한 무명의 긴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이곳이 모두에게 축제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바꾸게 됐다.
레이블이나 공연에서 아티스트와 음악을 소개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디구루 : 잠깐 반짝하는 사람보다 씬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아티스트를 찾으려고 한다. 전자음악은 아무래도 해외에서 먼저 시작된 만큼 처음에는 그들의 음악을 답습하거나 흉내 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과정을 오래 거치면서 결국 자기 것으로 체화해 본인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들, 그런 아티스트를 찾는 게 기준인 것 같다.
oddeen : 자기가 생각하고 좋아하는 걸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계속 고민하는 솔직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들. (웃음) 계속 물어보고 열의를 보여주면 나도 어느 순간 내 작업처럼 몰입하게 된다.
시봉새 : ACS를 운영하면서 가장 크게 보는 기준은 '변태성'이다.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자기 음악에 미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서로 시너지가 난다. 그렇게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슷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같다.
가재발 : 페스티벌에 가보면 음악이 다 구린 경우가 많다. (웃음) 변태까지는 못 되더라도 일단 음악이 좋은, 사운드가 좋은 작가를 우선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티스트의 폭은 좁아지는 것 같다.
가재발은 < MULL >로 영국 테크노 차트 1위를 기록했고, 디구루도 일본을 중심으로 활발한 DJ 활동을 이어왔다. 초기의 해외 활동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가재발 : 지금은 믿기 어렵겠지만 믹스 CD를 직접 만들어 유럽과 일본의 레이블에 우편으로 보냈다.
디구루 : 2004년경 일본 웹진 인터뷰를 보고 찾아온 일본 DJ가 내 플레이를 들은 뒤, 이듬해 자신이 일하던 일본 클럽으로 초대했다. 그 일을 계기로 꾸준히 일본에서 디제잉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에는 한국 DJ가 일본에서 플레이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 흥미롭게 보는 시선도 있었고, 일본 DJ들과는 다른 내 디제잉 스타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이디오테잎, 힙노시스테라피, WeSA 모두 해외 주요 페스티벌과 투어를 통해 꾸준히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해외 무대에서 직접 체감한 관객 문화나 공연 환경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디구루 : 우리가 처음 해외 투어를 시작한 게 2011년이고, 유럽 투어를 시작한 게 2015년이니까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다. 유럽 투어 10년 차쯤 되니까 느껴지는 건 처음 보는 팀에게도 시간을 주는 관객 문화가 있다는 거다. 모르는 팀이 나와도 일단 앞으로 와서 들어보고 판단한다. 페스티벌이 ‘모르는 음악을 만나는 장소’로 기능하는 문화는 한국 공연 시장에도 꼭 있었으면 좋겠다.
Jflow : 해외에서는 전자음악의 사운드 자체가 익숙하다 보니 우리가 만든 음악도 큰 설명 없이 관객들에게 빠르게 받아들여지고 섞이는 느낌이 있다. 특히 새로운 음악을 탐구하고, 자신이 몰랐던 세계에 들어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언어나 음악이 달라도 빠르게 공연에 스며드는 게 눈에 보인다. 해외 활동을 하며 음악이 정말 제3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걸 체감했고, 그만큼 음악이 가진 소통의 힘에 대한 책임감도 생겼다.
가재발 : 동시대 실험 전자음악을 소개하는 CTM Festival은 나와 WeSA에 큰 교훈을 줬다. 10일 동안 베를린 곳곳의 공연장과 클럽에서 열릴 수 있는 건 그만큼 전자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서울을 베를린처럼 만들 수는 없겠지만, 결국 우리도 전자음악을 즐기는 관객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 아티스트가 해외 시장에 진입하고 꾸준히 활동하기 위해서는 에이전시의 역할도 중요하다. 해외 에이전시는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나?
디구루 : 일종의 신용 보증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아직 유럽에서 정식으로 음반을 낸 적이 없기 때문에 페스티벌 디렉터 입장에서는 에이전시의 보증이 크게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개런티와 라이더 협상, 투어 동선과 일정 조정 같은 건 밴드가 일일이 하기 어려운데, 그 부분을 관리해 주는 것만으로도 투어에 엄청난 힘이 된다.
Jflow : 우리는 현재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등에 에이전시를 두고, ALPS가 중심에서 해외 에이전시와 매니지먼트를 조율하는 형태로 활동하고 있다. 해외는 현지 에이전시가 없으면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다. 에이전시가 각 나라와 도시의 페스티벌, 베뉴 프로모터에게 아티스트를 소개하며 기회를 만들어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 아티스트들에게는 이런 해외 활동의 구조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SXSW 같은 행사 역시 단순한 음악 페스티벌이 아니라 인디펜던트 아티스트가 프로모터, 에이전시, 레이블, 매니저 등 업계 관계자들에게 무대를 선보이는 ‘쇼케이스’에 가깝다. 좋은 무대를 보여주면 실제 제안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해외 페스티벌을 다닐 때마다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아티스트를 찾고 있다는 걸 느낀다. 기회는 정말 많다. 일단 움직여라!
EBB Music의 제롬 윌리엄스(Jerome Williams)는 이디오테잎뿐만 아니라, 잠비나이, 키라라 등 다양한 한국 아티스트들과 협업해오고 있다. 해외 관계자들이 한국 전자음악가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디구루 : 수년 전 제롬에게 비슷한 질문을 했는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한국적이다”라고 하더라.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해외의 음악을 따라가기보다 당장 우리 앞에 있는 국내 관객을 신나게 만드는 데 집중해왔던 것 같다. DR 형이 늘 하는 말이 “이래도 안 신나?”다. (웃음) 그렇게 한국 관객의 반응에 맞춰 음악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흥이 녹아든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해외의 전자음악 문법을 따라가는 데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과 한국 로컬의 독창성이 만들어지는 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디구루 : 결국 따라가기를 포기하는 순간인 것 같다. 해외의 유행을 아무리 쫓아가도 그들은 계속 앞서가니 따라잡을 수 없다. 그걸 내려놓으면 비로소 내가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음악을 만들고 있는지가 보인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색깔이 생기고, 그것들이 모여 로컬의 색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oddeen :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창적인 무언가는 결국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한다. 밖에 자주 나가지 않더라도 내가 사는 곳과 사용하는 언어가 한국이니까. 아직 그런 지점을 뚫고 나온 아티스트가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아티스트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꾸준히 보여주면서 선례가 생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전자음악의 분기점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Jflow: 힙노시스테라피 같은 경우는 한글로 노래하기 때문에, 시작점 자체가 서구 중심의 전자 문법과 아예 다르다고 본다. 그래서 더 흥미롭게 들릴 수 있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을 배워서 우리만의 문법으로 뒤트는 걸 즐기는데, 이런 시도가 한국적인 전자음악의 독창적인 색깔이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전자음악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소리’란 무엇인가?
가재발 : 좋은 소리는 깨끗하거나 예쁜 소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공간과 몸 안에서 소리의 구조와 긴장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소리다. 나는 소리를 귀로만 듣는 대상이라기보다 몸으로 경험하는 물질에 가깝게 생각한다.
디구루 : 몸이든 마음이든 움직이게 만드는 게 좋은 소리라고 생각한다.
시봉새 : 전자음악인데도 아날로그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소리 아닐까 싶다.
Jflow : 음악은 결국 파동이기 때문에 몸을 타고 느껴지는 소리가 가장 좋은 소리라고 생각한다.
oddeen : 청자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는 소리가 가장 좋다. 기술적인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결국 ‘사람’이 있어야 한다. 꼭 완벽하지 않아도 좋은 무언가 말이다.
소리를 무한히 생성하고 수정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에서, 수많은 선택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사운드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궁금하다.
디구루 : 의도적으로 하드웨어 위주로 작업한다. 각 하드웨어가 가진 한계 안에서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는 과정이 재미있다.
Jflow : 하드웨어가 주는 제약도 즐기고, DAW가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도 즐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 상황과 목적에 맞게 두 환경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편이다.
oddeen : 기본 플러그인만으로 최대한 작업해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 쌓이고, 나만의 프리셋이 생기는 것 같다.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 컴퓨터로 소리를 녹음하고 음악을 만들거나 편집하는 프로그램
AI가 음악을 생성하는 시대에도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고유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재발 : 새로운 기술이 저절로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어떤 시스템을 설계하고 무엇을 선택하며,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지느냐다. 태싯그룹에서는 AI를 완성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도구라기보다, 사람과 함께 연주하는 예측 불가능한 파트너로 보고 있다.
디구루 : AI를 생성기로 쓸지, 하나의 도구로 쓸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도구로 사용하는 이상 결국 인간의 선택과 판단이 들어간 전자음악이 나온다.
시봉새 : 인간이 연주하면 정확한 박자에서도 반의반 박자씩 빠르거나 느려질 때가 있다. 그런 완벽하지 않은 움직임에 따라 소리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소리가 인간만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Jflow : 세세하게 노브를 돌리며 직접 소리를 만지고 변화시키는 손맛과 감각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샘플링 역시 아티스트가 직접 소리를 발견하고 선택해 자기 방식으로 사용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영역이라고 본다.
oddeen : 지친 모습과 솔직함, 그로 인해 무너지는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실수’다. 그런 불완전함이 오히려 사람답게 느껴진다.
같은 전자음악 공연이라도 DJ 셋과 라이브 액트(Live Act)는 음악을 결정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이 다르다. 두 공연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재발 : 결론적으로는 ‘순서’의 차이다. 관객이 먼저냐, 내가 먼저냐. DJ는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한 자리라면, 라이브 액트는 내 음악을 잘 표현하기 위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디구루 : 결정되는 타이밍이 다르다. 라이브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대부분의 결정이 내려지고 그 안에서 변주한다면, DJ 셋은 3~4분마다 관객 반응을 보며 실시간으로 다음 트랙을 결정한다. 라이브는 집중력 있게 1시간 이내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DJ 셋은 길게는 7시간 이상 이어지기도 하니 타임 스케일도 많이 다르다.
시봉새 : 즉흥적이지 않다면 두 방식 모두 같다고 생각한다.
*라이브 액트(Live Act) : 아티스트가 무대에서 악기와 장비를 직접 다루며 음악을 실시간으로 연주하고 만들어내는 공연 형태
전자음악은 클럽이나 페스티벌의 대형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경험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하는데, 작업할 때부터 이러한 공간성과 물리적인 체험을 염두에 두는 편인가?
가재발 : 클럽이나 페스티벌을 상상하며 곡을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곡 안에는 자연스럽게 공간성이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대신 저음역이 비어 있지는 않은지, 각각의 소리가 자기 자리를 제대로 잡고 있는지는 항상 신경 쓴다.
디구루 :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신경 쓰려고 한다. 잔향이 1초인 공간과 3초인 공간에서는 같은 소리도 다르게 들린다. 그렇다면 결국 다른 음악이 되는 셈이다.
Jflow : 공간성과 물리적 체험은 당연히 고려한다. 오히려 큰 사운드 시스템은 모든 대역이 잘 나오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모든 베뉴의 환경이 완벽한 건 아니기 때문에, 제한적인 사운드 시스템에서도 좋은 소리가 나도록 믹싱과 마스터링 단계에서 많이 신경 쓴다. 악조건에서도 음악이 빛나게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자 음악은 때로는 리듬과 질감만으로 전개되기도 하고 반대로 강한 보컬이나 랩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전자음악에서 멜로디와 보컬은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
디구루 : 절반의 솔직한 생각은 보컬을 드러내는 게 전자음악이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또 절반은 전자음악이 장르라기보다 DIY 정신이라는 사고방식이라 생각한다.
Jflow : 보컬이 들어가면 명확한 전달력이 생기고, 없으면 자유도가 높아진다. 둘 다 멋진 방향이다.
가재발 : 보컬도 그냥 하나의 악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oddeen : 가장 오리지널리티가 있고 저렴한 샘플 팩이 자기 목소리다. 소피(SOPHIE)처럼 툭툭 던지는 핵심 단어들이 곡의 밸런스상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각자 음악에서 시각적인 브랜딩이나 아트워크, 비주얼 퍼포먼스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가재발 : 나에게 오디오 비주얼은 결국 사운드, 음악이다. 음악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비주얼이 좋아도 흥미를 끌지 못한다. 시각을 음악의 한 도구로 본다.
Jflow : 전자음악은 반복적인 패턴 속에서 서사가 쌓이는 음악이다. 그걸 청각과 시각으로 동시에 전달하면 관객도 음악에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부터 VJ, 조명까지 비주얼 요소에 신경을 많이 쓴다. 최근에는 해외 페스티벌에서 무대 디자이너와 함께 무대 자체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런 시도들이 결국 관객 스스로를 무대의 한 요소로 느끼게 만들고, 음악에 완벽히 몰입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oddeen : 이번 < Damso >는 말이 많은 나 자신을 투영한 앨범이라 피부와 붉은색을 중심으로 비주얼을 전개했다. 여기에 특유의 러프함과 약간의 엉성함을 의도적으로 드러냈다. 결국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비주얼과 퍼포먼스를 좋아한다. 그래서 때로는 뜬금없어 보이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계산된 비주얼에는 오히려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최근 전자음악은 록, 힙합, K-POP 등 다양한 장르와 더욱 활발하게 뒤섞이고 있다. 각자의 작업에서도 이러한 장르 간 결합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으며, 현재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디구루 : 이디오테잎은 처음부터 크로스오버를 의도한 건 아니다. 라이브에서 리얼 드럼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좋았고, 세 멤버의 서로 다른 음악적 취향이 자연스럽게 섞이다 보니 익숙한 듯하면서도 처음 듣는 무언가가 나왔다. 지금은 DAW 기반의 작법이나 신시사이저가 거의 모든 장르에 쓰이기 때문에 넓게 보면 전자음악이 아닌 음악을 찾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oddeen : K-POP만 들어도 전자음악의 장르적 디테일이 쉽게 느껴진다. 원래 가요에서 전자음악적 요소가 빠진 적은 거의 없지만, 최근에는 특정 전자음악 장르를 더 깊게 가져와 가요의 문법으로 풀어내는 시도들이 재미있다.
Jflow : 전자음악은 가장 하이브리드한 장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떤 장르를 가져와도 어색하지 않게 섞일 수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음악을 제한 없이 힙노시스테라피 안에 넣어보고 있다. 결국 이런 장르 간의 충돌에서 새로운 음악의 문법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짱유 : 힙합은 원래 이것저것 섞이며 변화하는 음악인데, 지금은 전자음악과 섞이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힙합에 일렉트로닉 요소를 강하게 넣기도 하고, 힙노시스테라피처럼 반대로 힙합적인 전자음악을 만들 수도 있다. 이제 한국 대중도 일렉트로닉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단계까지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진짜 일렉트로닉이 세상을 먹을 때가 됐다! (웃음)
단순히 인지도를 넘어 사람들을 유입시키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현재 한국 전자음악 씬을 대표하는 스타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Jflow : ‘이디오테잎’이다. (웃음) 지금까지 계속 버텨내면서 새 앨범을 내주는 것 자체가 저희한테 큰 힘이다. 프로모터들도 이디오테잎을 통해 전자음악에 관심을 갖고 다른 아티스트의 섭외로 이어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전자음악의 대중화에 엄청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구루 : 지금 떠오르는 건 ‘키라라’와 ‘힙노시스테라피’다. 우리는 이제 약간 복덕방, 노인정 느낌이다. (웃음) 내가 생각하는 스타는 누군가에게 “나도 저 사람처럼 음악 하고 싶다”는 마음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지금의 친구들에게 가까이 있는 키라라나 힙노시스테라피가 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짱유 : 이제는 내가 슈퍼스타가 되어보겠다. (웃음)
최근 씬에서 주목하고 있는 신진 아티스트가 있다면 누구인가?
시봉새 : ‘K특급모텔’. 밴드캠프에서 처음 발견하고 ACS 공연에 섭외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퀴어 문화를 드러내는 비주얼 퍼포먼스와 그라인드코어(Grindcore) 음악을 굉장히 잘 만든다. 특히 옛날 공포영화 내레이션 같은 샘플을 기막히게 써서 눈여겨보고 있다.
oddeen : ‘기나이직’과 ‘보잭(bovjck)’. 둘 다 자신을 잘 표현하는 아티스트다. 기나이직은 자기 속마음을 꺼내 이야기하며 다가오는 느낌이고, 보잭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이번 내 앨범에도 두 분 다 참여했는데 정말 좋다.
가재발 : 사실 신인을 만날 일이 많지는 않다. 그래도 오랫동안 자기 음악을 완성도 있게 해온 사람 중에서는 상수레코즈의 하임(Haihm)이나 국악 쪽에서 활동하는 임용주의 음악을 좋게 들었다. 아무래도 오래 활동했다 보니 사운드를 끝까지 정교하게 다듬은 음악에 더 끌리는 것 같다.
최근에는 하나의 큰 씬보다 각자의 취향과 지역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커뮤니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씬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보나, 오히려 서로를 더 멀어지게 만든다고 보나?
oddeen : 파편화라기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늘면서 취향에 따라 카테고리가 세분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디컨스트럭티드 클럽(Deconstructed Club)을 하는 아티스트가 한두 명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하나의 흐름으로 묶일 만큼 많아졌다. 다만 각 베뉴나 이벤트의 색이 뚜렷해지면서 특정 아티스트들만 그 안에서 활동하는 경향도 있다. 그걸 보고 다른 아티스트들이 진입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고. 그래도 씬이 한곳으로 모이기 어려워졌다는 게 꼭 나쁜 변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디컨스트럭티드 클럽(Deconstructed Club):기존 클럽 음악의 정형화된 리듬과 구조를 해체하고, 불규칙한 비트와 실험적인 사운드를 결합한 전자음악 장르
거대한 자본이나 산업의 지원 없이도 현재 한국 전자음악 씬이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며,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구조적 한계는 무엇이라고 보나?
디구루 :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대부분 겸업을 하고 있다. 이 음악으로 제대로 된 수입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빠져나가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게 원동력이라면 원동력인데, 동시에 가장 큰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DJ나 클럽 공연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25년째 페이가 그대로라는 건 확실히 건강한 구조는 아니다.
oddeen : 특별한 원동력이 있다기보다, 그냥 이걸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계속 열심히 움직이고 있어서 유지되는 것 같다. 그래서 감사한 사람들도 정말 많다. 아쉬운 게 있다면 한국의 더 다양하고 많은 전자음악가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을 만큼.
시봉새 : 전자음악가들의 음악을 여러 유통망과 오프라인 공간에서 접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형태의 레이블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전자음악이 소비되는 방식에는 어떤 아쉬움이 있나?
oddeen : 소비가 안 된다. (웃음)
짱유 : 어려우니까 그렇다. 나도 원래 힙합만 듣던 문외한이라 예전에는 전자음악을 “강남에서 뿅뿅거리면서 셔플 추는 음악”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나도 음악가인데 보컬 없는 전자음악을 느끼기까지 10년 넘게 걸렸다. 음악을 하는 사람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데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한테 갑자기 느껴보라고 하면 얼마나 어렵겠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한 게 아쉽다.
시봉새 : 한국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하고 ‘음악’은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음원보다 공연장이라는 오프라인 베이스가 중요하다. 공연장에서 아티스트의 시청각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전자음악을 경험하면 훨씬 특별하게 각인된다. 결국 라이브 공연을 자주, 많이 하는 게 가장 큰 시너지를 낸다고 생각한다.
그럼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고 싶다. 현재 한국에 ‘전자음악 씬’은 있다고 생각하나?
짱유 : 무조건 있다. 없으면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일 수가 없다.
oddeen : 오늘 같은 교류가 많이 생기면 그게 씬이 되는 것 같다. 다만 씬이라고 했을 때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수요라고 본다. 사람들이 계속 음악을 해왔다는 의미에서는 씬이 계속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음악이 소비되고 그 안에서 선순환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되어야 한다. 아직 방에 숨어 있는 친구들도 많을 텐데, 그 사람들까지 다 끌어내면 더 크게 발전하지 않을까 싶다.
가재발 : 대중문화 주변에는 본인들만의 변태적인 취향을 좋아하는 작고 세분화된 모임들이 있다. 하나하나는 작아도 그런 게 여러 개 모이면 굉장히 큰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음악 안에도 여러 씬이 있는데, 한국인 특유의 독고다이 정신 때문에 다들 섬처럼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나도 ACS는 오늘 처음 와봤고, 최근에 박다함 님도 처음 만나 모데시(MODECi)에서 공연하게 됐다. 같은 씬에 있어도 서로의 교류할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거다. 그렇다고 하나로 뭉쳐서 으쌰으쌰하자는 건 아니고, 누군가 중간에서 연결해 소소하게 교류하는 자리가 많아지면 씬이 더 힘을 받을 것 같다. 사실 나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힘들다. (웃음)
짱유 : 생각해 보면 전자음악가들이 일부러 섬처럼 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고, 전자음악 자체가 혼자 만들고 혼자 향유할 수도 있는 음악이라 굳이 모이지 않아도 유지돼온 거다. 그래서 지금은 스파크 하나만 제대로 튀면 전자음악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재발 : 전자음악의 시대가 온다? (웃음)
디구루 : 나는 사석에서 이 질문을 받으면 씬이 없다고 얘기한다. 어느 정도 규모와 시스템이 갖춰져야 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무조건 다양해져야 한다. 힘을 하나로 모으는 순간 씬은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그런 데서 삐져나온 아웃사이더들이 하는 게 전자음악 아닌가. 근본적으로는 각자 다른 음악을 하면서도 소수의 아티스트가 먹고살 수 있는 시스템이 돌아갈 만큼의 최소한의 인구가 필요하다.
앞으로 한국 전자음악 씬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졌으면 하나?
가재발 : 하나의 대표 장르나 스타를 중심으로 통일되기보다 서로 다른 전자음악 현장이 더 많이 생기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으면 한다. 아티스트가 한 번 발표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음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디구루 :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이 5년, 10년 뒤에도 다시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가 아니라 “요즘 활동하는 거 잘 보고 있어요”라고 인사하면서.
짱유 : 다들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어서 섬처럼 보일 뿐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즐기면서 하다 보면 언젠가는 스파크가 제대로 터질 거라고 믿는다.
oddeen : 우리 좋아하는 걸로 먹고살았으면 좋겠다. 생계 걱정하지 않고, 안전하게.
시봉새 : 공연장에 전자음악가 친구들과 그들의 소리를 들으러 오는 친구들이 신나서 오고 가는 날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